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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발적 사랑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고대신문 탁류세평)

우발적이라는 것은 예기치 않은 사고, 범죄, 전쟁 등 부정적인 말들과 호응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그 예상치 못한 우연성 덕분에 긍정적인 것과 연결하면 더 괜찮은 효과가 난다. ‘우발적 사랑’처럼 말이다. 강신주는 모든 사랑은 기본적으로 우발적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발성을 기대하면서도 때때로 그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다.


  우발성은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는 세계에 대처하는 영혼을 ‘사량(思量)적 지혜’라고 불렀다. 여기서 ‘사량한다(calculate)’는 것은 헤아리는 것, 생각하는 것으로 그 전체를 빈틈없이 살펴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추정하는 것, 여러 모습을 그려보는 것으로써 우발성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 이후의 일에 대비할 수 있는 실천을 준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실천적 지혜(phronesis)라 불렀다.


  우발성(contingency)은 무언가 있음직한 일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필연성을 전제하지 않는 우연(serendipity)과 다르고, 둘 이상의 일이 동시에 발생하는 우연의 일치(coincidence)와 다르다. 발생하기 어려운 확률이라고 할지언정 상상할 수 있거나 그럼직한 일이라면 우발적이다. 멀쩡하던 전봇대가 갑자기 쓰러져 나를 덮칠 수 있고, 지구에 어떤 혹성이 충돌하는 것도 상상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우발성은 그렇듯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세계의 변화 가능성이다.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한 장면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한 장면

  전통적으로 학문은 확실한 것, 변치 않는 진리에의 탐구를 의미한다. 하지만 대학과 학문의 역할도 변화하듯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의 성격도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 이 시기, 앞으로의 세계가 그리 그럼직하게 도래하지 않을 것이며 그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알고 있다. 전통적 학문은 변하지 않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대학은 우발성에 대처하는 ‘실천적 지혜’를 다루거나 배우는 데 능숙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대학은 우발성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힘써야 한다.


  이 글을 쓰며 작년 10·29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참사는 그야말로 우발적인 것으로 충분히 헤아리고 살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점, 좁은 골목길 구조, 팬데믹 이후의 행사라는 점 등을 사려 깊게 생각했다면 그 일을 어찌 막을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 세계에서 우발성을 생각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앞으로의 세계는 더 크고 심각하고 복잡하며 파급력이 큰 변화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전 지구는 연결되어 있어 더 심각한 연쇄적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에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쉽게 해결될지 모른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발전은 다뤄져 왔던 익숙한 문제에 대해서는 확률로서 꽤 그럴듯한 답을 내어놓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 데이터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우발성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미래는 우발성에 대처하고 실행하는데 달려있다.


  나는 극장 같은 곳에 갈 때면 비상구의 위치, 대피할 수 있는 경로들을 미리 ‘시뮬레이션’ 한다. 모든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다음에 취할 행동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 그러한 생각이 더 나은 결과가 되길 희망한다. 사랑은 우발성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 내일 사랑하는 이와의 데이트를 생각하며 여러 상황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 와중에 생기는 우발적인 일들에 잘 대처한다면 그 데이트는 더 성공적일 것이다. 그 사랑의 성공을 바라는 것처럼, 앞으로 우리에게 도래할 우발성이 긍정적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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