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를 갱신하는 삶
- bosubkim8
- May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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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루프물’은 특정 시간대로 리셋(reset)된 상황을 무한반복 하는 영화, 소설, 만화 등의 장르를 말한다. 루프물의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혹은 강제로 되살아나고(revival)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고(review)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 등장인물들은 다른 시도를 반복해 점점 ‘더 나은’ 내가 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입력창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이 현재형의 질문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답하기를 요청한다. 이 질문들은 정교하게 의도된 것이며 나의 최신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갱신(update)하기를 유도한다. 나의 현재에 필터와 효과를 더해 쉽게 나를 올릴(upload) 수 있다. SNS는 과거 따위에는 미련을 두지 말라는 듯 과거를 타임라인의 뒤편으로 아득히 밀어낸다.
레이코프와 존슨(George Lakoff & Mark Johnson)은 우리 인류 문화에서 위(up)는 좋은 것, 미래적인 것, 더 나은 것과 정합성을 형성해 왔다고 말한다. 위(up-)는 한 단계 더 향상되고 나아진 최신의 것을 은유한다. 이러한 ‘위’로 향하는 갱신(update)은 기존에 없었던 능력이나 기능을 덧붙여 더 뛰어난 상태를 추구한다. 최신을 추구하는 갱신은 참신하고 색다르며 낯선 느낌을 주지만 그 내용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공허하며 그 종착지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또 다른 의미로서 ‘다시 새로움’을 뜻하는 갱신(renewal, 更新)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이다. ‘갱’이 ‘다시(re-)’의 뜻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과거를 참조해 새롭게 만든다. 낯선 새로움이 아닌 일부가 탈각되고 교체되는 갱신이다. 내가 본 것을 다시 보고 경험한 것을 다르게 인식해 그 사태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어제 그렇게 했다면 오늘은 다르게 한다. 줄곧 A로 해왔다면, A’, A’’, A’’’… 를 만들어 조금씩 변주한다. 그리고 그 A를 다시 할 때, 그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한다. 그렇듯 갱신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조금씩 새로워지는 중이다. 한 신문이 소개한 연구에 의하면 인체의 전체 세포 수는 30조 개, 그중 1%를 차지하는 약 3300억 개, 80g의 세포가 하루에 교체된다고 한다. 그런 추세로 약 80일이면 인체의 모든 세포가 교체돼 나는 ‘물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매 순간 미세하게 변화하고 항상 생성 중인 과정에 있다. 그러므로 내가 변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뇌과학자인 제럴드 에덜먼(Gerald Edelman)에 의하면, 우리의 전체의식의 단일성은 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일관성은 사건을 오직 한가지로 보게 해 주어진 맥락에서 가장 손쉬운 해석을 하도록 한다. 의식의 일관성은 과거의 경험을 한가지로 이해하도록 해 사태를 그 자체로 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따라서 나의 갱신을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을 산 내가 더 새로워졌다면 그것으로 꽤 만족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돌아볼 때 기억나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하루 중 가장 길게 느낀 시간을 기억해 보자. 삶 사이의 여백에서 삶이 달라진 그 순간을 기억해 보자. 니체는 삶의 의미 있는 순간을 ‘삶의 교향곡의 간격들과 휴식시간들’이라 했다. 삶의 긴 흐름 사이에서 잠시 멈춰 다른 변화를 시도해 보자. 그렇게 오늘을 산 저녁의 나에게 묻는다. 오늘 나를 새롭게 만든 순간은 언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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