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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목적 없이 보아야 보이는 것들 (고대신문, 탁류세평)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때, 무언가를 할 때, 어딘가로 나설 때, 무엇이든 목적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목적에 사로잡혀 있고 목적을 잃었다 느낄 때 허무함을 느끼며, 마치 목적 없이 살 수 없다는 듯 목적을 갈구한다.


  얼마 전 기자에게 ‘목적’에 대한 글을 쓰겠다 했더니 ‘갓생 살기’라는 말을 알려줬다. ‘갓생’은 좋은 것을 유난스럽게 강조하는 표현인 ‘갓(god)’과 인생의 한자 ‘생(生)’을 합친 말로 철저한 계획을 통해 생산적으로 일하면서도 잘 먹고 잘 쉬는, 자신을 충실히 관리하는 삶이라고 한다. ‘갓생’을 위해서는 계획을 반복하여 실천하는 ‘루틴’과 소소한 의식적 습관인 ‘리추얼’, 아침을 한두 시간 일찍 시작하는 ‘미라클 모닝’이 필요하다. 그런 삶을 산 하루에 만족스러움을 더해 ‘갓생 살았다’고 표현한다.


  ‘갓생 살기’는 삶을 목적으로 채우는 결정판처럼 느껴진다. 작은 일상 하나하나에 목적을 부여함으로써 전체 삶의 목적을 증명하려는 것일까? 한 신문 칼럼은 갓생 살기의 열풍을 요즘 세대가 자신을 지키는 몸부림이라 해석했다. 작고 소소한 목표를 실천해 전체 삶에 대한 목적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심리학자인 로렌스 바살로우(Lawrence Barsalou)는 ‘스키마(schema)’ 이론을 통해 개념이나 사건을 구조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설명한 바 있다. 스키마와 같은 사고방식은 우리가 ‘새’를 생각할 때 날개, 부리, 꽁지를 가진 ‘날 수 있는’ 동물로 생각하는 식이다. 새의 목적은 ‘나는 데’ 있고 날개는 그 목적을 수행하는 것으로 본다. 큰 개념의 목적을 작은 개념들이 모여 수행한다. 커다란 목적은 세부적인 것들과 유기적인 관계 안에 상정된다.


  문제는 목적의식에 매몰되면 ‘차이’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새를 ‘날기 위한’ 목적적 존재로 본다면 새가 지닌 여러 신체의 다양한 역할을 볼 수 없다. 교정을 산책하며 만난 까치는 날개를 펴는 대신 두 발로 뛰며 꽁지로 바닥을 팡팡 친다. 까치의 꽁지는 날기 위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 밖에도 구애할 때, 위신을 세울 때, 먹이를 찾을 때도 쓰인다고 한다. 꽁지의 쓰임을 인간의 눈으로 다 이해하기는 힘든 법이다. 그 목적이 단지 날기 위한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의 목적도 하나일 리 없고 그 자체의 여러 목적이 있을 뿐이다. 대학의 목적이 취업 하나일 리 없고 수업의 목적이 시험일 리 없으며 시험의 목적도 성적 한가지가 아닐 것이다. 내 생의 목적도 하나일 리 없으므로 성공이나 행복도 삶의 여러 목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방식으로 목적에 대한 의식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목적에 묻혀있던 것들이 보인다.


  목적 없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산책이다. 산책은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가다 돌아오면 그만이고 쉬어 가거나 옆길로 샐 수 있다.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어서 산책하며 마주하는 것들을 ‘목적 없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산책할 때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진다. 산책길에서 만난 까치를 보는 마음은 생소하고 새롭다. 까치는 날아다니는 대신 종종 뛰어다니며 꽁지로 바닥을 두드려 대지에 진동을 만든다. 그 행동이 잡고자 하는 벌레를 깨우는 일일 수 있고 나뭇가지를 헤집어 집짓기에 적당한 것을 찾기 위한 행동일지 모른다. 꽁지의 목적은 날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까치..
까치..

  이 글을 쓰는 동안 학교는 중간고사 기간을 맞이했다. 도서관에서는 학생들이 시험공부에 열중이다. 시험의 목적은 무엇인가? 시험의 목적을 잊는다면 시험으로 인해 변화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을 치르고 난 후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험을 마친 나는 어제의 나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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